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람 하차투리안 (문단 편집) == 그 외 == 강사/교수직을 지내면서 여러 제자들을 길러냈는데, 대부분 소련이나 여타 사회주의 국가 혹은 [[제3세계]] 출신 학생들이 하차투리안의 문하생으로 거쳐가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. 발레 등 리드미컬한 곡의 작곡자로 지나치게 유명했고, 자신도 그걸 자각하고 있었는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특히 선율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고 한다. 이들 제자 중에는 [[월북]] 작곡가로 유명한 [[김순남]]도 있었고, 하차투리안은 김순남을 가르치면서 꽤 재능 있는 학생이라고 치켜세우면서 김순남이 작곡한 노래 '조선 빨치산의 노래'를 러시아어 번안 가사로 편곡해주기도 했다.[* 이 편곡은 하차투리안의 다른 편곡 작품들과 함께 작품 전집 악보에도 수록되어 있다.] 하지만 김순남은 [[한국전쟁]] 후반에 [[북한]]에서 귀국하라는 지시에 따라 얼마 배우지 못하고 떠나야 했고, 귀국 후 [[숙청]]과 복권을 반복하다가 [[결핵]]으로 인해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사망했다. 과거 [[아르메니아 드람|아르메니아 50 드람]] 지폐 앞면에 하차투리안의 얼굴이 있었으며, 현재까지도 아르메니아에서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며, 아르메니아 음악을 세계화하였다고 큰 존경을 받고 있다. 같은 아르메니아계로 저명한 작곡가인 앨런 호바네스나 유명 밴드 [[시스템 오브 어 다운]] 등을 생각해보았을 때, 아르메니아는 많지 않은 인구에 비해 음악적 저력이 꽤나 강한 나라이다. 그의 악보와 영화음악 자료들은 [[세계기록유산]]으로 지정되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